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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의 봄’ 오나] 들리나요? 소녀의 외침이

작성자 : 애니휴먼 (ip:) | 작성일 : 2016-12-29 | 조회수 :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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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ㆍ일 외교당국의 담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법적 책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은 부정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의 증거’다.

이들의 증언은 이후 쿠마라스와미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과 게이 맥두걸 유엔 인권소위 특별보고관 보고서가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권고한 기반이 됐다.

 

(김학순 할머니)

한번 들어와서 30분 정도 사람을 곤죽으로 만들기도 했지.” 어떤 때는 비위가 틀려 반항이라도 하면 늘어지게 맞았다.

생리를 할 때 쯤이면 솜을 말아 피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깊이 넣고 군인들을 받아야 했다. 나중에 솜이 나오지 않아 고생할 때는 짐승만도 못한 삶에 설움이 복받쳤다. 할머니는 4개월 만에야 조선인 남자를 만나 위안소를 탈출했다.

김 할머니는 1991년 일본정부가 “위안부 제도는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는데 분개해 처음으로 증언을 했다.

김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을 하면서 뒤이어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생생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살아있는 증거’들이 제시되자 일본 정부는 실태 조사에 착수했고 이를 토대로 1993년 이른바 ‘고노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학교 보내준다 해서 얼마나 좋았는데” 이옥선 할머니 =“학교를 보내달라”며 보채던 이옥선(88) 할머니가 15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어머니는 이 할머니를 부산의 한 집에 수양보냈다. 그러나 이 할머니를 입양한 곳은 부산의 우동집. 그곳에서 식모로 일하던 이 할머니는 울산의 한 술집에서 트럭에 실려 중국 만주 투먼의 한 비행장에 내려졌다.


하루에도 수많은 군인들을 받는 것이 힘들어 반항을 하자 한 군인이 칼집으로 길 할머니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1944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지만 길 할머니는 해방이 되고서야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일본군의 만행이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관련 기록이 유네스코(UNESCO)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에 달하는 유네스코 분담금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공조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등재하려 했지만 유네스코 측은 “다른 피해국과 공동 제출해 달라”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군인들을 받는 것이 힘들어 반항을 하자 한 군인이 칼집으로 길 할머니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1944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지만 길 할머니는 해방이 되고서야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일본군의 만행이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관련 기록이 유네스코(UNESCO)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막기 위해 10%에 달하는 유네스코 분담금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월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공조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등재하려 했지만 유네스코 측은 “다른 피해국과 공동 제출해 달라”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출처: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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